한 달 전 포스팅에서 “법정화폐에 연동돼 그 가치가 산정되는 암호통화(가상화폐)가 어떻게 단독으로 가치의 교환 수단처럼 쓰일 수 있는지 그 구조를 모르겠다”는 요지의 글을 썼었다. 발행주체(중앙은행)와 그 가치의 보증자(국가)가 명확한 법정화폐와 달리 암호화폐의 장점이자 단점인 “자유성”에 대한 회의가 주 근거였다. 수요와 공급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면 시장이 균형상태에서 벗어나 미쳐 날뛰는 이례적인-따라서 그 피해도 규격 이상인-경우가 발생할 경우 고삐를 잡을 방법이 없으므로.

화폐나 돈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절대적 가치가 없고, 이들이 교환의 수단으로서 지니는 상대적 가치는 결국 교환되는 재화의 고유가치에 기인한다. 재화를 생산하는 회사나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국가가 없으면 주식이나 채권이 존재할 수 없고, 주식/채권시장이 없으면 파생상품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모든 가치는 결론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온전히 보존될 때, 다시 말해 계약 당사자들 간의 신뢰가 유지될 때만 발생 가능하다 …

가상화폐는 프로그래밍 기술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어서 그 종류만 800종에 달한다. 누가 계약자고 누가 각 가상화폐가 갖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보장할 것인지도 모른다. 계약 당사자들끼리만 합의하면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 가상화폐의 장점이라고 하는데, 현물 거래에서도 계약 당사자가 도망가 보증인이 덤터기 쓰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에서 제3자의 보증이 없는 거래가 얼마나 안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오늘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다.

이더리움 319달러서 10센트로 ‘깜짝 폭락’ 파문 (2017.06.23.)

22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이더리움 가격은 전일 GDAX라는 가상통화 거래소에서 약 319달러에 거래되다가 몇 초 만에 10센트까지 내려앉았다. 이같이 짧은 시간에 가격이 급락하는 것을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라고 한다. 이더리움 가격은 순식간에 원래 수준으로 반등했다 …

이는 실제 증시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2010년 5월 플래시 크래시 때도 손실제한 주문 문제가 있었다. 당시 다우존스평균산업지수는 순식간에 거의 1000포인트 떨어졌다가 몇 분 만에 회복했다.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주식이 갑자기 5% 이상 움직일 때 거래를 정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CNBC는 이번 순간폭락 사태로 가상통화 시장 인프라가 아직 큰 거래를 처리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증권시장 같은 경우 저런 폭락이 발생하면 사이드카 발동이나 (미국의 경우) 볼커 룰 같은 규제의 법제화라든지 (한국의 경우) 연기금 출동 등 정부의 개입을 통해 금융시장이 실물시장에게 가하는 피해를 최소화시킨다. 그런데 가상화폐는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책임져야 할 주체도 명확치 않고, 수습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화폐가 갖는 상대적 가치(구매력)이 순식간에 99.69% 폭락한 거다. 1,000,000 원이 31원 된 것. 이게 과연 화폐로써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뒤집어 얘기하면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가 일어난 직후 백만 원어치를 샀을 경우 몇 시간만에 3,190 배의 차익을 올려 백만 원이 32억 원이 되는 대박을 터뜨렸을 것이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확실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블록체인이 암호통화 기술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가상화폐에 투자할 만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